Monday, February 28, 2011

쥐불놀이와 오줌싸개 - 정월대보름 민속놀이

쥐불놀이와 오줌싸개

"아아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시뻘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잠잠한 성문 위에서 내려다보니 물 냄새, 모래냄새, 밤을 깨물고 하늘을 깨무는 횃불이 그래도 무엇이 부족하여 제 몸까지 물고 뜯을 때…" 1919년에 발표한 주요한의 시 '불놀이' 둘째 연이다. 시꺼먼 밤하늘에 이빨자국을 내듯 타오르는 불덩이. 가슴을 활활 살라먹는 그 밤불의 향연은, 실연당한 청년에겐 물어뜯기는 아픔이지만 철부지 아이에겐 정녕 꿈에 그리던 장관이었다.



쥐불놀이, 1년에 단한번 허용된 불장난

정월 대보름
1989. 2. 18 [경향신문] 9면

 
신나는 놀이가 별로 없던 시절, 쥐불놀이는 그야말로 '환상특급'이었다. 아직 냉기가 덜 가신 들판, 달뜨기 무섭게 불을 놓고, "연기가 보름달을 끄슬릴 때", 어른애 할 것 없이, 덩실덩실 춤추며 복을 빌었다. 깡통에 불씨를 넣고 힘차게 돌리며 달리는 불 바퀴(火輪)는 얼마나 멋졌던가. 먼데서 보면 사람은 안 보이고 불이 혼자 둥글둥글 원을 그리며 잘도 굴러갔다. 조금 느슨하면 불덩이가 떨어질까 두려워 아이는 어깨가 빠져라 깡통을 돌려댔다.

정월대보름 쥐불놀이는 시골서만 하는 게 아니었다. 1980년대까지는 서울에서도 즐겼다. 주로 한강 둑에서, 아니면 사대문 바깥 변두리에서 아이들은 깡통을 돌리고 어른들은 쥐불을 놓았다. 일 년 열두 달 중 정월 보름에만 애들 불장난이 용인됐다. 그걸 준비하느라 아이들은 설을 쇠기 무섭게, 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중형깡통과 철사 줄을 찾기 바빴다. 바람이 잘 들게 깡통 옆구리에 구멍을 숭숭 뚫고 양쪽 귀엔 꼼꼼히 철사 줄을 맸다.

원래는 쥐불놀이 불씨로 쑥방망이를 썼다. 그것이 한국전쟁 무렵 솔방울 같은 불쏘시개를, 깡통에 넣어 돌려 불을 키운 뒤 쥐불을 놓는 것으로 변했다. 전쟁 때 군용품이 많이 나돌며 깡통으로 바뀌었는지도 모른다. 음력 첫 쥐날(上子日)이나 대보름 전날 논밭두렁 마른풀을 태우는 쥐불놀이는 농작물을 갉아먹는 쥐를 잡고 병해충 애벌레도 태우는 세시풍속이었다. 마을 입구에 '달집'을 세워 보름달이 뜨는 순간 불을 붙이고 이어 쥐불을 놓았다.

가마니와 짚, 생솔가지로 엮는 달집은 말 그대로 '달의 집'이다. 움막 모양 집 가운데엔 긴 대나무를 꽂았다. 어스름 날이 저물면 마을사람이 모두 달집 주변에 모여든다. '달집을 나온' 보름달이 마을 위로 휘영청 올라오면 사람들은 "달에 불붙이자! 달 좀 끄슬리자!"고 외치며 불을 댕겼다. 하늘에선 보름달이 연기에 가려 콜록대고 땅에선 쥐불이 활활 타오르는 한판 불놀이가 벌어졌다. 풍년을 기원하고 달님에게 소원을 비는 굿판이었다.

대보름 달집태우기
1998. 2. 12 [동아일보] 1면

머리가 큰 형이 쥐불 깡통을 만들 때면 어린 동생은 옆에서 신이 났다. 들판을 마음껏 뛰놀며 불놀이를 하는 건 딱지치기나 구슬치기와는 류가 달랐다. 왕십리 벌판에선 한편에 불을 놓고 다른 한쪽에선 작은 막대기와 조약돌을 던지며 '땅따먹기' 편싸움도 벌였다. 물론 피 흘리고 주먹질하는 진짜 싸움은 아니었다. 대장 지시에 따라 동네 청년들이 편을 갈라 "와-!" 함성과 함께 우르르 달려가 상대 진영이 도망가게 밀어내는 놀이였다.

어린 꼬마들은 잘 끼워주지 않았지만 그런다고 멀건이 구경만 하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오히려 중고생 형들보다 더 소리 지르고, 폴짝대며 벌판을 뛰어다녔다. 입에선 뜨거운 김을 뿜어내고 얼굴 가득 땀방울이 맺혔다. 어쩌다 상대 쪽이 던진 조약돌에 이마를 맞아도, 돌부리에 발이 채여 넘어져도 "괜찮아, 안 아파" 혼잣말을 뇌며 열심히 달렸다. 날다람쥐처럼 잽싸게 뛰느라 아이들의 얼굴은 불덩이보다 더 붉었다.



불장난은 동네 곳곳 오줌싸개를 만들고..

슬기의 민속 대보름
1985. 3. 4 [동아일보] 11면

그렇게 불 곁에서 뛰고 엎어지다 집에 돌아오면 꼬마들은 의례 꿈에 불을 보기 마련이었다. "어떻게 해, 불이 막 나한테 덤벼들잖아…" 다급해진 아이는 우선 가지고 있는 물로 불을 끄기 십상이다. 뜨끈한 온기가 아랫도리를 타고 흐르는 걸 느꼈을 때는, 아차 늦었다! 정월보름이 지나면 동네 빨래널이에는 유난히 '이불지도'가 많이 걸렸다. 엄마에게 군밤을 맞은 아이는 내복바람에 키를 뒤집어쓰고 집집마다 소금을 얻으러 다녀야 했다.

왜 밤에 오줌을 싸면 소금을 얻어 와야 하는지, 쌀 키를 머리에 써야 하는지 알 길은 없었다. 그저 부끄러운 마음에, 아는 여학생이라도 볼까 두려워 이웃집 문을 살근살근 두드려 속삭이듯 소금을 구걸하곤 했다. 아주머니들은 웃음을 띠며 "이놈, 이불에 지도 그렸구나. 다 큰 놈이 오줌도 못 지려?" 한마디 하고 소금을 주었으나 느닷없이 빗자루로 키를 때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놀라게 하면 또 한 번 오줌이 지리는 걸 왜 어른들은 몰랐을까…



산불 방지를 위해 단속된 '쥐불놀이'

1970년대만 해도 농촌진흥청은 정월에는 "꼭 쥐불을 놓고 화재위험이 없는 한 산기슭까지 다 태우도록" 농가에 권고했다. 67년엔 "벼 줄무늬잎마름병은 한번 걸리면 치료할 길이 없다"며 "단 잎마름병 애 멸구는 섭씨 52도만 넘으면 죽으니 모내기 전에 꼭 논밭두렁에 불을 질러라"고 권유했다. 77년엔 "논두렁에 불을 놓는 것은 슬기로운 옛 풍습이자 즐거운 놀이"라며 3월 15일까지 모든 농가가 하나도 빠짐없이 잡초를 태울 것을 촉구했다.

문제는 쥐불놀이가 쉽게 산불 등 대형화재로 변하기 쉽다는 점이었다. 78년 산림청은 "1, 2월 두 달간 산불 74건이 발생했고 이중 절반인 36건은 정월대보름 쥐불놀이로 인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 "77년 한해 682건의 산불이 났으며 어린이 불장난이 111건, 논밭두렁 태우기로 번진 화재가 66건이었다."며 가급적 쥐불놀이 자제를 요망했다. 농진청은 식량증산 병충해 방제를 위해 쥐불 놓기를 권장하고 산림청은 산불방지를 위해 쥐불놀이 금지를 주장하는 묘한 양상이 빚어졌다.

이 싸움은 결국 산림청이 이겼다. 78년 산림청은 "쥐불놀이를 권장하되 반드시 관계 공무원 입회 아래 논밭두렁을 태우며 산간 다락 논엔 일절 쥐불을 놓아선 안 된다"고 시달했다. 그러다 79년엔 "어린이 쥐불놀이를 적극 단속하며 산불방지를 위해 전 직원이 비상근무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내무부도 화재특별경계령과 전국 소방요원 비상대기를 지시했다. 그리고 80년. 이번엔 서울시도 나서 구청별로 '쥐불놀이 특별단속반'을 편성했다. 내무부, 산림청, 서울시 삼각편대가 단속에 나서자 쥐불놀이는 한껏 위축됐다.

병충해 쫓는 쥐불놓기
1981. 3. 7 [경향신문] 7면

그렇다고 해서 풍속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80년 서울 개화산, 동대문구 묵동 야산 등에서는 쥐불놀이 불똥이 튀어 산불이 났다. 경북 영양서는 밭두렁을 태우다 산불이 나 소나무 4만 그루가 소실되는 사고도 있었다. 게다가 83년 전북 고창에서는 저수지제방에서 쥐불놀이를 하던 어린이 4명이 실종되는 사고도 일어났다. 세시풍속으로서의 쥐불놀이를 옹호하던 언론도 위험성을 강조하며 자제를 권하는 쪽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점차 사라져가는 대보름 민속놀이

대보름 민속놀이 되살린다
1989. 2. 16 [동아일보] 9면

사실 '물불 가리지 않고' '용맹하게 뛰어놀던' 아이들이 나약해진 측면도 있었다. 쥐불놀이와 함께 벌이곤 했던 편싸움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작은 돌을 던지며 밀어내던 놀이를 지금 또 벌인다면 경찰서 신세를 지기 딱 알맞을 터였다. 불놀이 역시 '불장난'으로 격하됐다. 거기다 진짜 불을 대신한 휴대용 조명기구의 발전보급도 한몫 했다. 한강변에 나가는 아이들은 쥐불 깡통대신 막대조명등이나 소형 폭죽을 들고나가기 시작했다.

90년대에는 쥐불놀이가 민속촌이나 놀이공원의 손님 끌기 상품으로 변질됐다. 대보름날 윷놀이하고 제기차고 연 날리는 낮 행사가 끝난 뒤 밤에 뒤풀이 형식의 여흥으로 쥐불놀이가 제공됐다. 또 제주와 경남의 지방자치단체들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불놀이행사를 경쟁적으로 벌이기 시작했다. 경남 창녕군은 95년부터 화왕산 군립공원에서 '대보름 억새 태우기 행사'를 시작했으나 그것이 끝내 70여명이 숨지거나 다치는 2009년 참사로 이어졌다.

올해 정월대보름은 2월17일이다. 이미 80년대부터 평자들은 우리 시속의 급속한 사라짐을 아쉬워했다. 아마 그래서 이런 반어법 표현도 나왔을 것 같다. "옛날엔 얼음 위에서 팽이치기를 하다 손이 시리면 쥐불을 놓아 녹이던 낭만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아스팔트 위에 쥐불을 놓고 층층 아파트 속에서 부럼을 깬들, 또 스모그 하늘 위에 연을 날린들 도대체 무슨 정취가 있겠는가?" 아련한 추억을 더듬으려면 들판에 나가야하는데 이제 그걸 어디서 찾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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