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는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었다. 74년 흑산 파시를 취재한 신문에 따르면 생선찌개 한 냄비는 무조건 1500원, 맥주 안주로 나오는 땅콩 한줌에 500원이었다. 개다리소반에 술 한상을 보면 못 잡아도 1만원은 나왔다. 술값만 비싼 게 아니었다. 80원이던 환타 한 병이 150원, 70원짜리 비누 한 갑은 130원이었다. 또 30원이던 하이타이가 60원, 30원이던 연탄 한 장이 90원이나 해 거의 모든 물가가 육지의 최소 2배, 많게는 4-5배까지 받았다. 오죽하면 억울함을 못 이겨 담벼락에 "손님은 곰이다"는 낙서를 대문짝만하게 써놓기까지 했겠는가.
아이러니한 것은 날씨가 좋아 어군을 제대로 쫓아야 풍어를 바라보지만 파시 장사꾼, 특히 여인네들은 오히려 날이 궂기를 기원했다는 점이다. 산꼭대기에 올라 고기잡이 선단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여인들은 "바람아, 강풍아 석 달 열흘만 불어라, 우리 님 보고 싶어…"를 소리 내 읊조리기도 했다. 기상상황이 안 좋으면 배는 조업을 중단하고 가까운 항구로 피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라도 님을 만나고 싶다는 염원이 거기 담겼다. 파시에서 맺어진 한두 푼 풋사랑일 망정 그리움을 잉태하는 건 여느 사랑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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