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사선택과 생략의 화법을 쓴 진경산수화 진경산수화는 ‘우리 땅에 실재하는 우리의 산천’을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분명히 실재 경치를 화폭에 담지만, 분명히 보이는데도 그리지 않거나, 혹은 반대로 그 자리에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보이지 않음에도 그리는 것이 있다. [낙산사도]에 탑을 그리지 않은 화가는, 낙산사에 탑이 있는 걸 모르거나 못 봐서가 아니라 낙산사와 주변 산세, 떠오르는 태양만으로 화면을 구성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에 탑을 ‘일부러’ 생략했던 것이다. 진경산수화에는 이렇게 경물의 ‘취사선택’과 ‘생략’의 화법이 들어 있다. 보이는 그대로 다 그린다면 화면은 다종다양하게 빼어난 절경으로 가득 차겠지만, 얼마나 복잡하고 어지럽겠는가. 화가는 단지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그대로 옮겨 그리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본 풍경을 머릿속에서 다시 구성해서 화폭 위에 쏟아내는 것이다. 낙산사는 화가의 재량과 상상력을 통해 [낙산사도]로, 정양사는 [ 정양사도]로 재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금강산 유람이 크게 유행하던 시절에 태어난 정선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은 금강산을 가장 많이 그린 화가다. 금강산은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평생 한번 꼭 가보고 싶은 그런 곳이었다. 유람을 즐기고 자신의 저택과 정원에서 지인들과 교유하면서 서화로 마음을 기탁하는 풍조는 조선후기 문인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다. 그들은 앞 다투어 너도나도 금강산 유람길에 올랐고, 다녀온 후에는 신선 세계를 본 양 자랑을 늘어놓기 바빴으며, 유람기를 쓰고 그림을 그려 현장에서 느꼈던 생생한 체험을 오래 간직하고자 하였다. 정선은 이렇게 금강산 유람이 크게 성행하던 시절에 태어나, 출중한 그림 실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금강산 그림을 그렸다. 이는 당시 금강산 그림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취향을 반영한다. 정선의 [ 금강전도]에는 “발로 밟아서 두루두루 다녀 본다 한들 어찌 베갯머리에서 이 그림을 마음껏 보는 것과 같겠는가”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그림 속에서 만나는 금강산이 주는 감동을 실제 그 경물 앞에 서 있는 체험과 비교하는 것은 어찌 보면 어불성설이지만, 그만큼 금강산 그림을 갖고 싶어 했던 사람들의 마음만은 진실일 것이다.
그림 속 곳곳에 있는 금강산의 명소들 정선이 그린 [정양사도]를 보자. (그림 1참조) 뾰족뾰족한 암산과 부드러운 토산을 배경으로 시원한 푸른색 지붕의 정양사가 산중턱에 있다. 정양사는 금강산에서 중요한 사찰이다. 고려 태조가 담무갈(曇無竭) 보살을 친견하고 예배를 드린 다음 절을 창건하였다는 전설을 가진다. 산의 정맥이 양지바른 곳에 놓였다고 해서 정양사라 이름 붙였다고 전하기도 한다. 한국전쟁 당시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어 현재는 약사전 등 일부만 남아있는 상태다. 금강산의 주봉인 비로봉으로부터 내려오는 금강산의 정맥 위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정양사의 망루인 헐성루에서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한꺼번에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금강산 유람을 계획한 이들에게는 꼭 들려야 하는 코스였다.
정선이 금강산을 다녀온 것은 현재 밝혀진 바로는 그의 팔십 평생 총 3회에 그친다. 1711년에 [신묘년풍악도첩]을 그린 것으로 보아 이때 처음으로 금강산 여행을 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1712년에는 그가 이병연(1671~1751)의 부친 이속(1647~1720), 이병연의 아우 이병성(1675~1735) 등과 함께 금강산을 유람했던 기록이 남아 있다. 그 후 35년이 지나 1747년, 그의 나이 72세에 3번째 금강산 유람을 하였다. 물론 몇 번 더 여행하였을 수는 있으나 아직 확인된 바는 이것이 전부다. 그에 비해 그가 그린 금강산 그림은 매우 많다. 한번 보고 와서 계속 재생산해낸 그림이지, 늘상 현장에서 보고 그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금강산 내금강의 전모를 담은 [금강전도] 유형의 금강산도만 그린 것이 아니라, [정양사도]처럼 금강산에 있는 명소들을 클로즈업해서 그리기도 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명소를 각각 부각하여 그린 것들이 금강전도 속에 모두 살아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정선의 [장안사도]를 보자. (그림2 참조) 아치모양의 만천교를 지나 장안사에 이르는 공간이 그려졌는데, [금강전도]의 왼쪽 하단을 보면 만천교와 장안사가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그림3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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